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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미국 출신 ‘레오 14세’ 교황 즉위

by han235 2025. 5. 9.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 새 교황이 연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울려 퍼진 첫마디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갈등과 전쟁으로 흔들리는 지구촌 모두에게 던진 간절한 초대장이었다.

 

1. 흰 연기와 함께 시작된 새 시대

지난 5월 8일(현지시각)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솟구치자, 콘클라베를 지켜보던 인파는 일제히 환호했다. 곧이어 “하베무스 파팜(우리에게 교황이 있다)”이라는 선포와 함께 133명의 추기경이 4차 투표 끝에 선택한 이름이 공개됐다. 시카고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69).

그는 ‘레오 14세(Pope Leo XIV)’라는 즉위명을 택해 2 천 년 가톨릭사 최초의 미국 태생 교황이 되었다. 평화를 향한 메시지는 물론, 라틴계 이민 2세로서 미국과 페루 이중 문화권을 관통한 이력은 글로벌 교회의 지형을 단숨에 바꿔 놓을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는다.

 

2. “치클라요의 성인”이라 불린 삶 — 교황 레오 14세의 발자취

레오 14세 교황의 이야기는 시카고 남부 하층 노동자 가정에서 시작된다. 수학 특기생이었던 그는 대학(빌라노바)에서 철학·수학을 병행하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서원에 매료돼 수도생활을 선택했다.

이후 1980년대 페루 북부 치클라요로 파견되어 미신·마약·빈곤에 시달리던 어민과 농민 곁에서 30년 넘게 ‘동네 신부’로 살았다. 스페인어·이탈리아어·영어뿐 아니라 케추아어까지 터득한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신의 언어는 ‘연민’”이라고 설파하며, 빈민운동과 토착 문화 보존을 함께 이끌어 ‘치클라요의 성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3. 첫 일성: “평화는 대화 위에 놓인 다리”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선 새 교황은 라틴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외쳤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인사를 그대로 차용해 “분열과 전쟁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대화와 만남으로 하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한 문장에서 레오 14세가 추구할 세계관이 명확히 드러난다. “대화(Dialogue)”와 “다리(Bridge)”라는 키워드는 프란치스코(1936 ~ 2025) 시대의 대화적 사목 노선을 잇되, 더 적극적인 중재자(pacem facere)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청사진으로 읽힌다.

 

4. 왜 ‘레오’인가? 이름 속에 숨은 역사적 코드

그가 택한 ‘레오’라는 교황명은 ‘사자를 닮은 용기’라는 뜻을 넘어 노동 인권과 사회 교리를 정립한 레오 13세(1878 ~ 1903)의 유산을 계승한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노동문제’ 해결을 천명한 회칙 Rerum Novarum을 오늘날 기후 위기·플랫폼 노동·난민 착취 문제와 접목해 ‘새로운 사회 회칙’ 발표가 조만간 예고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교황청 외교가에서는 “지구적 불평등 해소”와 “창조질서 보전”을 병렬로 다룰 ‘에코-사회 교리’가 다음 시노드 의제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5.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 던질 지정학적 파급력

가톨릭 인구 6,80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은 그간 바티칸 외교무대에서 ‘재정 기여국’이면서도 비非유럽 출신 교황 배출에는 실패해 왔다. 레오 14세 즉위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며, 중남미·아시아 가톨릭 교세 확장에도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무엇보다 바이든 행정부 이후 동성혼·이민·낙태 쟁점이 첨예한 워싱턴 정계에서 교황의 윤리적 권위가 외교 레버리지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중국과 단교 중인 바티칸이 시진핑 체제와 맺은 ‘주교 임명 합의(2018 임시협약)’를 재협상할 때, 미국 출신 교황이라는 변수는 복잡한 지오포리틱스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 전망이다.

 

6. 아우구스티노 영성의 ‘조용한 개혁’

레오 14세는 예수회·프란치스코회 출신 교황 전통에서 한발 비켜선 첫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이다. “나 자신부터 회개하는 내적 여정이 곧 교회 개혁”이라는 아우구스티노 영성은, 형식보다 내용·권위보다 관계를 중시한다.

교황청 안팎에서는 ▲교구 주교 임명 절차의 투명화 ▲성직자 성폭력 대응 프로토콜 강화 ▲시노달리타스(공동 합의적 교회) 제도화 등 ‘조용하지만 구조적’ 혁신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7. ‘치유와 화해’ 미션 — 직면한 4대 과제

  • 성적 학대 스캔들 재발 방지
    피해자 중심 배상·예방 교육·사법 연계 강화를 위한 ‘전 세계 교구 공동 가이드라인’이 조기에 제정될 가능성이 크다.
  • 생태·기후 정의 실천
    라우다토 시’ 이후 구체적 행동을 강조하며 “탄소 중립 바티칸” 달성 목표 시기를 앞당길지 주목된다.

  • 여성 리더십 확대
    여성 부제 임무, 교황청 관료기구 상층부 여성 임명 확대가 거론된다.
  • 종교 간 평화 외교
    우크라이나·가자지구·수단 내전 등 분쟁 중재를 위한 ‘세계 종교 지도자 평화 포럼’ 구상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8. 글로벌 신자들의 기대와 우려

미국과 페루 교구는 자국 출신 교황 탄생에 축제 분위기이지만, LGBTQ+ 사목·여성 사제 서품 등 쟁점에서는 신학적 스펙트럼이 크게 갈릴 것이다. 프란치스코 시대의 ‘관용적 목소리’를 이어가되 교리 수위를 어디까지 열어 둘지는 레오 14세 리더십의 첫 시험대다.

동시에 보수적 남미·아프리카 교구와 진보적 북미·유럽 교구 간 균형을 잡는 것이 ‘평화의 다리’라는 그 자신의 약속을 시험할 관문이다.

 

9. 마치며 — “대화의 사도”가 그리는 교회와 세계

레오 14세 교황은 평화, 대화, 다리라는 세 단어로 새로운 교황기를 열었다. 20세기 사회 교리를 넘어 21세기 생태·디지털·다문화 시대에 맞는 ‘연결된 영성(Connected Spirituality)’을 촉구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미 바티칸 성벽을 넘어 전 세계 광장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배에 탄 순례자입니다.
그 배를 뒤흔드는 폭풍 앞에서, 내가 먼저 손을 내밀겠습니다.”
이 선언은 교황 한 사람의 의지를 넘어, 교회와 시민사회·국제정치가 함께 짜내야 할 평화의 청사진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청년대회(WYD)와 로마 시노드에서 그 밑그림이 구체화될 때, 인류는 또 한 번 ‘흰 연기’ 같은 희망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